어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최종보고회를 마치며-바다가 노동과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2012년 4월부터 시작해서 6개월 동안, 국가인권위원회의 ‘어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참여했습니다. 계절을 두 번 넘기고 이제 최종보고서가 마무리 중입니다. 경기, 여수, 부산, 제주 지역의 연구자와 활동가로 구성된 실태조사팀은 연근해 어업 선원 이주노동자 178명의 설문조사와 16명의 심층면접, 수협, 선주협회 등 관련 기관 방문조사, 선원 숙소와 선박 등 현장 조사를 실시했었습니다.

배라고는 여객선 밖에 타 본 적이 없었으니, 맨 땅에 머리를 박는 기분으로 실태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평균’이 무의미한 선상노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으니 처음에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네요. 좌충우돌하는 사이에 이제는 멸치 포장지의 사진을 보고 ‘아, 기선권현망이네.’ 하고 알아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주로 바다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선원 이주노동자들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보름달이 뜨거나, 태풍이 불면 배들이 항구로 들어오니 달과 태풍을 쫓아 여기저기 항구를 돌아다녔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하고 싶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이야기가 차고 넘쳤습니다. 말 많았던 산업연수제가 완전히 폐지된 지 6년째인데, 20톤 이상 연근해 어선의 이주노동자 도입과 고용 시스템은 기존의 산업연수제도와 유사합니다. 주무부처는 국토해양부지만 제도 운영은 수협중앙회가 맡고 있고, 이주노동자 도입과 관리는 민간 영리업체인 현지 송출업체와 국내 관리업체가 담당합니다. 게다가 노동현장이 고립된 선상이어서 문제는 더 심각해 보였습니다.

하루 평균 조업시간 13.9시간, 3명 중 2명이 하루 12시간 이상 작업하는데 취업기간 1년 6개월 정도인 선원 이주노동자의 평균임금은 110만원. 그 임금조차 매달 정해진 날에 받는 사람은 53%.

송출비용 베트남 1,200만 원, 중국 1,000만 원, 인도네시아 460만 원 이상. 모국어로 된 계약서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선원 이주노동자는 16%. 신분증을 본인이 가지고 있는 선원 이주노동자는 단 21%, 욕설과 폭언 경험 94%, 폭행 경험 43%, 차별 경험 84%.

게다가 선원 이주노동자 관리를 위탁받은 관리업체들은 불법적인 관리비에, 이탈보증금에, 계약연장과 업체이전 수수료 등 다양한 명목으로 이주노동자 뿐 아니라 선주로부터도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관리업체가 다른 업종에 불법 취업을 알선하고 수수료를 받기도 했는데,그렇게 일한 선원 이주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은 물론이고 초과근로․연장근로 수당을 받지 못하고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있는 상황이더군요.

지난 10월 4일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태조사결과 최종보고회가 열렸습니다. 선원 이주노동자, 선주, 국토해양부, 수협중앙회, 해상노련, 변호사, 노무사, 이주민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토론자로 참석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당사자들이 모인 자리라서 모두가 동의하는 문제해결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거라 미리 짐작했었습니다. 그러나 선원 이주노동자들을 둘러싼 ‘실태’의 심각성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렇더군요.

그리고 또 다른 높은 벽이 있었습니다. ‘바다’는 다르다는 거였습니다. 선상 노동의 ‘특수성’앞에 노동권과 인권은 숨을 죽이고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실태조사를 처음 시작하면서 자료를 뒤적이다 연구소 자료실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묵은 책 한권을 찾았더랬습니다. 『현대판 노예선-인권의 사각지대, 원양어선 그 충격 보고서 선상폭력 그 실상을 고발한다』. 1991년, 전국 선원 피해자 협의회가 만든 책입니다. 김진숙씨가 ‘바다가 더 이상 노동과 인권의 사각지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라는 추천사를 썼네요.

그런데 지금 이 ‘옛날’ 책이 새삼 눈에 들어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한국인 선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실태조사 중에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이전에는 그랬지만…”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어났던 일이 지금 이주노동자들에게 일어나고 있고, 한국인 여성들이 겪었던 일을 이주여성들이 겪고 있고, 한국인 선원들의 어두웠던 옛 기억이 선원 이주노동자들에게서 다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한국인 선원들도 이 책을 통해 실상을 알리는 데서부터 시작했겠지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는 힘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알게 되는 데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가 해야 할 일도 그 일이겠지요.

어업 이주노동자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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