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보다 낮은, 2018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주거환경 실태조사 보고서

네비게이션도 찾지 못하는 비닐하우스 숲속에 덩그러니 놓인 컨테이너 박스, 유독성 농약이 천장까지 쌓인 창고 안 패널집, 전선이 어지러이 얽힌 벽지 벗겨진 벽, 시멘트 바닥에 소변을 보고 빨간 대야에 받아 놓은 물로 씻어 내려야 하는 욕실, 오물이 찰랑거리는 초록색 야외 간이 화장실, 잠금장치 없는 비틀어진 문, 뜨거운 선풍기 바람에 땀과 눈물로 범벅된 이주노동자들의 이야기…

최근 몇 년 사이 농축산업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와 생활환경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농축산업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유난히 추웠던 2017년 12월, 부산시 사상구 한 공장에 딸린 컨테이너 숙소에 불이 나서 잠을 자던 베트남 노동자가 사망했다. 겨울 한파가 몰아칠 때면 숙소용 컨테이너나 가건물에서 전열기 과열로 인한 화재로 이주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치는 일이 흔히 발생하곤 했다.

그런데 2017년 2월, 고용노동부는 ‘외국인근로자 숙식 정보 제공 및 비용 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발표했다. 이 지침은 사측이 제공하는 숙식에 대한 어떠한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월 통상임금의 최대 20%까지를 숙식비로 공제할 수 있다는 내용만을 담고 있었다. 게다가 관련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임시 가건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도 비용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노동자에게 동의서만 받으면 임금에서 선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고용노동부는 지침 발표 이후 고용주들에게 “외국인 근로자에게 숙식을 제공할 경우 상한 액 내에서 소요비용을 징수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컬러판 안내문을 배포하고, 숙식비 사전공제동의서를 각 지역 고용센터에 비치했다.

고용노동부가 지침을 발표하기 훨씬 전부터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주노동자들의 숙소와 식사에 터무니없는 비용을 매겨 임금에서 선공제하는 관행이 농업 부문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다. 숙식비만이 아니라 결근, 근무태만, 외출 등등의 명목으로 고용주가 자의적으로 정한 벌금이 공제되기도 하였다.

고용노동부는 해당 지침의 목적이 과도한 숙식비 공제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침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숙식비를 부과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을 상쇄하는 관행이 농업에서 전 업종으로 퍼지도록 날개를 달아주었다.

고용노동부의 지침이 발표되고 몇 달 후인 2017월 7월, 2018년 최저임금 16.4% 인상이 결정되었다. 10여 년 만에 찾아온 두 자릿수 인상률이었다. 그리고 12월, ‘최저임금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 TF 보고안’이 최저임금위원회에 제출되었다. 이 보고안은 숙식비 등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는 안을 담고 있었다. 이어서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매월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과 식대, 숙박비, 교통비를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2018년 5월 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TF 보고안도,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도 그 목적이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 삭감임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18년 7월, 중소기업중앙회는 ‘외국인 노동자 수습제’를 제안했다. 이주노동자에게 수습기간을 도입해 수습 1년차에는 최저임금의 80%, 2년차에는 90%, 3년차에 100%를 지급하자는 안이다. 이에 대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적극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그리고 업종별, 지역별, 연령별, 규모별 등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법률안들과 함께 이주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감액 적용해야 한다는 법률안도 발의되었다.

그 사이에 이주인권단체들에는 ‘고용주가 숙식비로 수십만 원을 공제하기 시작했다’, ‘숙식비 사전공제동의서에 서명을 하도록 강요받았다’, 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의 상담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2018년 3월, “이주노동자의 최저임금과 인간다운 삶터를 지키기 위한 실태조사” 를 전국의 이주인권단체와 노동조합에 제안했다. 제안서를 돌리는 과정에서 이미 비슷한 실태조사를 시작했거나 기획 중인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기왕에 하는 실태조사를 공동으로 기획하고 실시해 객관적 자료를 확보하자는 공감대가 넓고 깊게 형성되었다. 그래서 전국 22개 이주인권단체와 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들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1인당 수십만 원씩 비용을 공제당하는 숙소와 식사가 얼마나 열악한지,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공제 지침이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고, 알리고 싶었다.

실태조사 결과는 조사를 시작하면서 예상했던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 이주노동자들이 ‘최저보다 낮은’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에서 일하고 있었다.

시급이 최저임금 이상이라는 이주노동자는 50.9%에 불과했다. 2018년 최저임금이 비교적 큰 폭으로 올랐음에도 47.5%의 이주노동자는 월급이 오르지 않았다. 일하는 시간이 줄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여금이 없어지고 급여에서 숙식비 등을 새로이 공제하거나 공제금액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의 평균 노동시간과 평균 휴일에 맞추어 계산해 본 평균 월급 또한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다. 야간과 휴일 가산수당을 무시하고 4대 보험료를 모두 공제했다고 가정해도 그러했다.

2017년에 내지 않던 숙소비나 식비를 내기 시작했거나 그 금액이 늘어났다는 이주노동자는 거의 4명 중 1명이었다. 그러나 1인당 평균 138천원을 내는 숙소는 수년씩 장기거주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임시가건물이나 공장 내 숙박공간인 경우가 55.4%에 달했다. 구체적인 숙소 상태의 열악함은 그간 실시된 다른 실태조사의 결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와 고용노동부의 숙식비 공제 지침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진 때문인지 2018년 4월에 이어 2019년 1월 다시 한 번 , 고용노동부 고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가 개정되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는 이 고시에서 정한 깐깐한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그나만 사업장 변경을 요청해 볼 수 있다.

2018년 4월 개정된 고시에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 변경을 요청할 수 있는 주거시설 위반 사항이 추가되었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한 것을 이유로 직업안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자율개선명령을 받았는데 이행하지 않는 경우, 고용허가 신청 시 일반주거시설을 제공하는 것으로 기재하였으나 실제 임시주거시설을 제공한 경우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어 2019년 1월 개정(2월 1일 시행)된 고시에는 고용노동부가 정한 최소 숙소 시설 기준(침실, 난방시설, 화장실 및 샤워실, 잠금장치, 소화시설)을 충족하지 못한 것을 이유로 직업안정기관의 장으로부터 시정 요구를 받았는데 이행하지 않은 경우가 추가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임시주거시설 자체를 숙소로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임시주거시설에도 과도한 숙식비를 공제할 수 있도록 한 고용노동부의 지침을 폐지하라는 이주인권단체들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최소 숙소 시설기준과 이주인권단체들이 제시한 기준 사이에 차이도 매우 크다. 또한 기준 미달 시 직업안정기관의 장이 시정 요구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이다. 이는 이주노동자가 직접 사업주에게 숙소의 질에 대해 문제제기할 수 있는 경로를 막아버리면서 고용주가 시정 요구를 이행하지 않는 ‘정당한’ 사유가 있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 것이다.

집 아닌 집에 살면서 2018년부터 턱도 없는 비용을 월급에서 공제당하기 시작했는데 사업주에게 항의했더니 정부에서 받으라는 것보다는 적게 받는 거라는 답을 들었다는 한 이주노동자가 물었다. “우리 집값 누가 정했어요? 그 사람이 봤어요?”

고용노동부 숙식비 지침을 만든 사람, 이주노동자들의 집값과 밥값을 정한 사람은 이 물음에 무엇이라고 답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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