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취약계층의 실태와 법제도 개선방안 연구

2015년 5월 20일 세계인의 날 기념 기획전시전 "이주아동에게 차별없는 세상을"에 전시된 어린이들의 포스터 모음

이번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동시에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개헌 논의는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가 11개월 동안의 자문활동을 마무리하면서 2018년 1월 보고서를 제출했고, 지난 3월에는 대통령안이 발표되었습니다.

헌법 개정 논의에서 이주민과 관련된 쟁점은 국민이 아닌 사람, 즉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입니다. 즉 국민이 아닌 사람도 헌법 상 기본권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지, 어느 범위까지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지가 그것입니다.

자문위 안은 기본권의 주체를 원칙적으로는 ‘국민’에서 공동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으로 바꾸는 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권리의 성격 상 ‘국민’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한 영역에서는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으로 제한하였습니다. 특히 자유권적 기본권은 외국인을 포함한 인간의 권리지만 사회권적 기본권은 외국인을 제외한 국민의 권리라는 이분법을 인정한 선상에서 ‘국민’과 ‘사람’의 권리를 구분하였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은 그 근거가 불분명합니다. 그런데도 대통령 안 또한 기본권 주체성에서 자문위 안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이 부정된 권리는 매우 광범위합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헌법조문시안 중 외국인의 기본권 주체성이 부정된 권리>

자유권 : 거주·이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직업의 자유, 재산권

사회권 :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보건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쾌적한 주거에서 생활할 권리, 자녀에게 의무교육을 받게 할 의무

참정권 : 선거권, 공무담임권, 국민발안권, 국민투표권, 국민소환권

사법절차적 권리 : 국가배상청구권, 범죄피해자 구조·보호청구권

기본권 제한 : 헌법에 열거하지 아니한 기본권

의무 : 국방의 의무

참정권까지야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외국인’이기 때문에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박탈당한 결과는 현실에서는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너무나 큰 모순으로 나타납니다.

노숙인지원단체가 거리에서 쓰러진 노숙인을 발견했는데 그가 ‘외국인’으로 확인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시설입소도 어렵고, 의료급여도 받지 못하고, 무료구호 대상에도 포함되지 못합니다. 법이 국민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고, 법에 명시적인 조항이 없지만 국민만이 대상이라고 해석하는 관행 때문에 그렇기도 합니다.

각각의 사연이야 다양하지만 이주민이 노숙인이 되는 이유 자체가, ‘외국인’이기 때문인 경우도 많습니다. 처음 이들의 생활을 무너뜨리는 불운은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만성질환입니다. 아파서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외국인’이라서 안 그래도 빈약한 사회안전망에도 포함되지 못합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조상대대로 한국에서 살아왔고 국경 밖을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화교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생존을 위한 수입이 없으니 생활은커녕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노숙생활을 이어가게 됩니다. 그 사이에 제때 체류자격 갱신을 하지 않아서 미등록 체류자의 상태가 되어 있기도 합니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이주민 노숙인이, 대부분 너무 늦게, 충분히 치료 가능한 질병이 회복될 수 없이 깊어진 후에,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시설의 보호가 필요한 이주아동들의 경우에 상황은 더욱 답답합니다. 시설 아동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되어 각종 급여를 통해 지원을 받게 되는데, 현행법상 이주아동들은 그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사망했거나 키울 여력이 되지 않아서 보육원에 맡겨진 이주아동들은 보육원의 선의, 지방정부의 선처에 호소하며 아슬아슬한 보육원 생활을 이어가야 합니다. 때로는 부모의 학대로 시설에 입소했는데, 지원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자신을 학대한 그 부모에게 돌려보내지는 아동들도 있습니다.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그간 생존권적 기본권이 그야말로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로 다가오는 이주민 취약계층들을 만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가장 진보적이라는 헌법 개정안인 자문위안과 대통령안에서도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조차 외국인에게는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2018년 이주와 인권연구소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등에서 배제되어 생존권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이주민 취약계층의 사례와 관련 법제도에서 차별을 조사하여 알리는 일을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이 추상적인 문구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으로 다가와야 공동체 구성원 중 누군가를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기본권에서 배제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데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