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를 추모하며

2월 11일, 제15차 범국민행동의 날,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 작은 무대가 차려졌고,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을 현수막이 내걸렸습니다. “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10주기 추모집회”

10년 전 그 날 새벽, 단속된 미등록 체류자들을 가둬 두는 여수외국인보호소가 연기와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스프링클러는 설치조차 되어 있지 않았고, 화재경보기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보호소 직원들은 갇혀 있던 사람들이 달아날까봐 이중장치로 잠겨 있던 철창문을 쉽사리 열어 주지 않았습니다. 살려달라며 쇠창살을 두드리던 55명 중 10명이 사망했습니다. 부상을 입은 17명 중에는 수갑을 찬 채 병원 치료를 받은 이도 있었습니다. 안타깝게 죽은 이들은 가족의 동의도 없이 시신을 부검 당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살펴보러 갔던 인권활동가들은 이 기막힌 상황과 마주하고 뒷일을 어림해 볼 참도 없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었습니다. 그러나 화재의 진상은 제대로 규명되지 못했고, 사건에 대한 지휘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는데, 여수외국인보호소는 새단장을 마치고 규모가 더 큰 구금시설이 되었습니다. 1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미등록 체류자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불합리한 법제도는 개선하지 않으면서 미등록 체류자가 된 사람에게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하지 않는 현실은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매년 2월이면 추모집회가 열렸지만 올해는 특히 10주년을 맞아 추모주간을 가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2월 둘째 주 서울, 대구, 부산의 출입국사무소와 화성외국인보호소, 여수외국인보호소에 이어 광화문 광장에서도 추모집회와 기자회견, 1인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여수에서 추모집회를 마친 이들은 팽목항을 거쳐 올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추모주간 내내 갑작스런 한파가 몰아치더니 대설주의보로 팽목항으로 향하려던 발이 묶였습니다.

그 추운 날 저는 사무실 개나리자스민 화분에 새싹이 뾰족뾰족 올라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 춥다, 고 부들부들 떨고 있던 중이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덕택에 입춘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새싹에서 봄을 기억하는 식물의 힘을 느꼈고, 팽목항과 여수를 떠올리며 추모와 기억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기억은 과거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이라는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절망과 낙관은 둘 다 미래에 대한 확실한 기억이고, 그래서 둘 다 행동하지 않을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런 기억이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야말로 희망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올 한해도 쉽게 절망하거나 낙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이한숙(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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