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여성, 미투(#Me Too)에 답하다

Illustrated by Thaakirah Jacobs

3월 초, 한 언론사 기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주여성들의 미투 사례가 있으면 취재하고 싶다는 거였다. 순간 “미투 사례”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이주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한 사례? 아니면, 이주여성들이 미투를 외치며 성폭력에 대항해 함께 싸우자고 선언한 사례? 전자라면 숱하게 있어왔고, 후자라면 3‧8 여성의 날을 즈음해 있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 되었건 이주여성들의 미투 사례라는 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은 나이와 계층, 직업과 국적, 때로는 성별과도 무관하게 수많은 여성과 소수자/약자가 일상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폭력이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폭력과는 달리 성폭력은 피해자가 당당히 피해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데 크나큰 장벽이 존재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종종 폭력을 유발한 사람, 무언가 문제가 있는 사람, 가해자를 음해하려는 사람으로 취급당한다. 대체로 피해자보다 힘과 권력에 있어서 우월한 위치에 있는 가해자들은 이러한 피해자 책임론 뒤에 숨어 가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법적 처벌을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 오히려 무고죄나 명예훼손죄 같은 도구 뒤에 숨어서 피해자를 재차 공격한다. 그 결과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이라는, 가능성이 극히 낮은 사법정의 실현의 험난한 과정을 견디는 것 대신 침묵을 택한다. 실제 발생 건수보다 성폭력 신고 비율이 현저히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유도 이것이다.

“미투”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이 용어가 성폭력 근절을 위한 캠페인에 사용되게 된 계기를 마련한 미국의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하는 어린 소녀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그 때 그 아이에게 나도 그런 일이 있었다(me too)라고 얘기해 주었더라면” 이라는 후회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들 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유색 인종이고, 가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기 더 힘든 이들을 위해 많은 여성들이 “미투”를 외쳐줄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피해 여성들에게 당신들이 혼자가 아니고 수치스러워할 이유도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한편 미국 사회에 성폭력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를 보여줌으로써 상황의 심각성을 알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미투 캠페인이 시작된 지 12년이 지난 지금, 미투는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그리고 “나도 당했다”라며 성폭력 피해자들과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을 넘어서, 가해자가 처벌받고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구조, 성폭력과 침묵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도 싸우겠다”라는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1월 말 한 여성 검사의 미투를 시작으로, 검찰과 정치권을 넘어 문화예술계, 종교계,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 소속되어있는 여성과 남성들이 미투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미투 운동의 역사와 목적은 도외시한 채, 전문적인 직업을 가졌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피해자가 유명인에게 당한 성폭력을 공론화 하는 것을 미투 운동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에서는 새삼스레 소외된 여성들이 미투를 말할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기도 하다.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가 눈물을 떨구며 화장실 벽에 미투를 적고 있는 한겨레 그림판(2018년 2월 1일자)이나 한국 여성들은 폭로라도 하는데 이주여성들은 울고 있다는 조선일보 기사(2018년 3월 24일자)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용기 있는 수많은 피해자들에 의해 성폭력이 공론화되어왔고, 드물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법과 제도의 개선에까지 이른 사례들도 있어왔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이, 공권력에 대해 민주화 운동을 하던 학생이, 대학교수에 대해 조교가, 고용주에 대해 노동자가, 성인에 대해 어린이가, 비장애인에 대해 장애인이, 상급자에 대해 병사가, 그리고 한국인에 대해 이주민이 “나는 당했다”고 먼저 외쳤고, 본인에게 가해지는 2차, 3차 피해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공론화해왔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그동안 외롭게 싸워온 피해자들에게 “나도 당했다,” “나도 함께 바꾸겠다”며 보내는 지지와 연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난 3월 9일, 국회에서는 「이주여성들의 #Me Too: 여성이 안전한 세상 만들기」라는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주여성들은 노동자로서, 아내로서, 학생으로서 직장, 가정, 학교에서 본인들이 당해왔던 성폭력 경험을 공유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한 응답으로, 이주여성들도 선주민 여성들과 함께 “피해자는 존재하는데 가해자는 무죄가 되는 현실”을 바꾸고 대표적으로는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에 함께 하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주여성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반영한 제도 개선 방안도 요구했다.

이주여성들의 요구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체류자격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국내에 체류하는 모든 이주여성이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의 피해를 당했을 때 접근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울 것. 둘째, 체류자격의 박탈이나 추방과 같은 불안 없이, 이주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신고하고, 피해자로서의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것. 셋째, 성폭력 피해를 당한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에게 사업장 변경을 보장하고 성폭력을 조장하거나 방관한 사업장의 고용허가를 취소할 것. 넷째, 이주노동자 고용사업장, 선주민 배우자, 이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기관 및 공무원에게 다문화 감수성에 기초한 성폭력 예방 교육과 인권 교육을 실시할 것.

한국에서 본격적인 미투 운동이 시작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지금, 벌써부터 “지겹다,” “언제 적 이야기를 이제 와서 꺼내는가,”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등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은 오래된 일을 끄집어내는 것이 지겨운 게 아니라, 오래되어도 잊히지 않아서 지겹고, 계속해서 “나도 당했다”는 사람이 등장하는 게 지겨운 게 아니라,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당하고도 변하지 않아온 현실이 원망스럽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절망한다.

이주여성들을 포함한 앞선 성폭력 피해자들은 모처럼 시작된 미투 운동에, 나도 당했고 너도 당했다면 함께 바꾸자며 다시 입을 열고 있다. 누구의 목소리도 덮이지 않고, 피해자들이 생존자로 거듭나고, 가해자들은 죗값을 치루고, 성폭력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희망한다.

(이주와 인권연구소 김사강)

※ 이 글의 일부는 금속노조신문 바지락 2018년 4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