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체류, 원인은 놔두고 결과만 바꾸려는 고용노동부

김사강 (이주와 인권연구소)

도로교통공단에서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통계를 발표했다. 그러자 정부는 신규 운전면허 취득자들에게 과태료 보증금조로 500만 원씩을 예치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면서 운전자들이 교통법규를 위반하면 맡겨둔 예치금은 국고로 귀속될 것이고, 5년 간 법규 위반 사실이 없는 운전자들에게만 예치금을 돌려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민들의 반발은 거셌다. 예치금 500만원이 없는 사람은 운전면허도 못 따는 것이냐,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가 얼마나 된다고 예치금 500만원을 고스란히 몰수하느냐, 법은 기존 운전자들이 어겼는데 왜 신규 면허 취득자들이 그 피해를 받아야 하느냐, 등의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중요한 건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의 감소라며 제도 도입을 밀어붙였다.

몇 년 뒤 도로교통공단이 또 다시 교통법규 위반 통계를 발표했다. 예치금 제도 도입에도 불구하고 교통법규 위반 운전자의 수는 줄지 않고 있으며, 전국의 시도 가운데 서울시에 특히 그 숫자가 많다는 내용이었다. 정부는 예치금 제도를 유지하는 한편, 더 이상 서울시민에게는 운전면허시험 응시 기회를 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아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운전자의 가족들도 운전면허 발급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개인의 법 위반 행위에 대한 불이익을 가족과 이웃에게 전가하는 연좌제라며 분개했다. 교통법규 위반은 운전자의 과실만이 원인이 아니라, 도로교통법 자체의 독소조항과 불합리한 교통신호 체계 등 시스템의 문제에도 원인이 있는데, 시스템은 그대로 둔 채 위반자 처벌에만 급급해 하고 있다는 비판도 빗발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부는 새로운 규정의 시행을 강행했다.

아무리 가상이지만 말도 안 되는 시나리오일까? 이것은 미등록 이주민, 이른바 ‘불법체류자’를 줄이겠다며 한국과 베트남 정부가 합작으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2012년 한국 고용노동부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불법체류율이 높다며 베트남 정부에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더 이상 신규 이주노동자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베트남 정부는 고용허가제로 출국하는 이주노동자에게 1억 동(한화 약 500만원)을 예치금으로 받고, 미등록으로 체류 하다가 귀국하는 이들에게는 이 돈을 돌려주지 않기로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미등록 체류자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사업장 변경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과 인권침해를 견디다 못해 어쩔 수 없이 미등록 체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여전히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5월 베트남 정부와 고용허가제 양해각서를 다시 체결하면서 미등록 체류자가 많이 발생한 10개 도시 출신 사람들 및 미등록 체류자의 가족들에게 고용허가의 전제 조건인 한국어시험 응시를 제한하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시민단체와 노동단체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고용허가제 개선 요구는 가뿐히 무시하면서 말이다.

지난 8월 21일, 고용허가제 도입 12주년을 맞아 서울, 부산, 대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고용허가제 폐지 집회가 열렸다.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해 노동권을 침해하고 강제노동을 강요하는 고용허가제의 폐해를 증언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고용허가제가 야기하는 문제들에는 눈을 감은 채, 오로지 ‘불법체류자’ 감소에만 목을 매고 있다.

※ 이 글의 일부는 금속노조신문 바지락 2016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