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의 열기가 지나간 자리, 출입국관리법 개악안 통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털사이트 실시간검색어 순위에 보탬이 되어 보려고 마우스 클릭질을 해봤다.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야당의 필리버스터 때문이었다.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은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문구 하나 수정 없이 여당안대로 통과되었다. 속이 쓰렸다. 그러나 필리버스터 덕택에 소리소문 없이 통과될 뻔했던 테러방지법의 시커먼 속내가 세상에 충분히 까발려졌다.

그런데 그날 밤, 테러방지법 못지않게 속내가 시커먼 또 다른 법안은 소리소문 없이 통과되었다. 출입국관리법 개악안이다. 2013년 12월 20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이후로 공익변호사그룹을 중심으로 이주인권단체들이 2년간 그 통과를 막아보려고 의견서 제출,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 국회토론회, 대체법안 발의 등 고군분투했었다. 그 2년 간 활동이 낳은 성과는, 출입국관리법 위반자가 있다는 의심만으로 출입국관리공무원이 사업장, 영업장, 사무실 기타 이와 유사한 장소에 관리자 동의도 없이 영장 발부도 받지 않고 마음대로 출입해 조사할 수 있도록 한, 조항 하나가 삭제된 것이다.

그러나 개악안은 총 18개 개정사항과 30개가 넘는 신설조항이 포함된 방대한 양이었다. 주 내용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정보주체 동의와 영장 없이 개인들의 광범한 정보를 법무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이주민의 강제퇴거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등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려는 것이었다. 테러방지법과 쌍벽을 이룰 법한 이들 조항은 모두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테러방지법 통과보다 더 속이 쓰리다. 이런 법이 통과되었다는 사실 자체를 아는 사람이 별로 많은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이주아동권리보장기본법은 이번에도 역시 국회 상정도 되지 못하고 자동폐기 되었다.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다. 법안 내용을 훑어보기라도 했나 싶은, 악성댓글로 대표되는 악선동이 수년간의 활동가들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필리버스터의 열기가 지나간 자리, 폐허 같다. 그러나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는 책에서 재난이 휩쓸고 간 폐허에서 사람들은 연대와 이타주의와 즉흥성이 복귀한 시민사회를 경험하고, 공적 삶, 소속과 목적과 권력에 대한 열망과 가능성을 자각한다고 했다. 누군가 2016년의 필리버스터를 경험한 한국은 그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했다. 동의한다. 국회를 둘러싼 수년간의 연대활동을 경험한 이주인권단체들도 그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이한숙 (이주와 인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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